[포토북 큐레이션] 멀고도 가까운 얼굴들

포토북 큐레이션 #1 《멀고도 가까운 얼굴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되는 물건 중의 하나는 가족사진일 것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들부터 지갑에 꽂아 넣은 한 장의 사진까지 결코 지울 수 없고 끝내 버릴 수 없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 안에는 분명 가족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때로 거대한 재난 속에서도 가족앨범을 챙기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있을 만큼 우리에게 가족사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게 더없이 친밀하고 따뜻했던 존재가 담긴 그 이미지는 때로 한없이 멀고도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속의 얼굴을 현실에서 더 이상 직접 바라볼 수 없을 때 그렇다. 그럴 때마다 그 이미지가 얄밉고도 야속하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절을 붙잡아 보여준다.
여기 모인 스무 권의 사진책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와 가장 가까웠던 얼굴들을 바라보거나, 이 세상을 떠나 아득히 멀어진 얼굴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시간을 담고 있다. 이 사진책들을 천천히 넘기며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수많은 관계들의 가치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사진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 박지수(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1
Son
Christopher Anderson
200 x 245mm, 96쪽, 하드커버
9783868283907
심플한 제목 그대로 자신의 아들을 기록한 사진책이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매그넘 소속 사진가로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과 분쟁을 취재해 왔다.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과 슬픔을 목격했을 앤더슨은 이제 아들의 탄생과 성장의 기쁨을 카메라로 바라본다. 사진가의 시선을 넘어 아빠의 애틋한 눈길로.

#2
Looking for Alice
Sian Davey
220 x 260mm, 104쪽, 하드커버
9781907112522
저자인 ‘시안 데이비’는 다운증후군을 지닌 자신의 딸 ‘앨리스’를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 사진들을 엮은 책을 처음 넘기면 어딘지 조금 달라 보이는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소꿉장난을 하고, 모래 장난을 하고, 달리고, 넘어지고, 울고, 웃고…. 그리고 그 아이를 살뜰하게 바라보는 어떤 시선을 느끼게 된다.

#3
Tenko
Hanayo, Hajime Sawatari
150 x 210mm, 368쪽, 하드커버
9784908526039
일본의 사진가 ‘하나요’가 딸 ‘텐코’의 성장 과정이 담긴 방대한 사진을 재구성하고 편집한 사진책이다. 책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텐코의 모습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한 살 때부터 열네 살까지 텐코의 모습은 하나요가 촬영했고, 그 이후의 모습은 텐코가 가장 좋아하는 책 ‘앨리스’의 사진가 ‘하지메 사와타리’가 촬영했다. 두 명의 사진가가 바라본 텐코의 모습이 흥미롭게 대비된다.

#4
Misao the Big Mama and Fukumaru the Cat
Miyoko Ihara
216 x 145mm, 70쪽, 하드커버
9784898153192
그 누구도 이 사진책을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여든일곱 살의 할머니 ‘미사오’와 여덟 살의 하얀 고양이 ‘후쿠마루’가 함께 밭일을 하고, 나란히 누워 함께 잠을 자고, 사이 좋게 생일 케이크 앞에 함께 앉은 모습을 바라보면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도 따뜻하게 녹는다. 사진가인 손녀가 기록한 미사오와 후쿠마루의 동행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따라가 보자. 그 누구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Julian & Jonathan
Sarah Mei Herman
230 x 280mm, 160쪽, 하드커버
9781915423559
이 사진책에는 두 명의 남자만 등장한다. 한 명은 작가의 아버지인 ‘율리안’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작가보다 스무 살 어린 이복동생 ‘요나단’. 2005년부터 두 사람을 바라보았던 사진 작업은 20년 넘게 이어진다. 그사이에 요나단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고, 율리안은 점점 늙어간다. 일정한 거리에서 변함없는 눈길로 그저 바라보며 찍은 사진은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한 장 한 장 시간이 쌓여갈수록 깊은 울림을 준다.

#6
Flower Smuggler
Diana Tamane
225 x 300mm, 178쪽, 하드커버
9789493146143
세일즈맨인 아버지가 판매하는 물건의 사진들, 트럭 운전사인 어머니의 운행 목록들, 할머니가 찍은 꽃 사진들, 증조할머니가 사진 위에 적은 자신의 혈압 수치 메모들 … 책 안에는 사소한 메모와 평범한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작가에게는 가족의 존재를 환기하는 소중한 흔적들이다.

#7
The Middle of Somewhere
Sam Harris
190 x 241mm, 160쪽, 소프트커버
9781941781012
호주 남서부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책이다. 사진가인 ‘샘 해리스’와 가족은 도시의 각박한 삶을 벗어나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자연 속으로 떠난다.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딸들과 함께한 12년의 세월이 사진책에 담겼다. 지면에는 중간중간에 그들의 삶과 생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메모들이 붙어 있어 흥미로움을 더한다.

#8
I love you, I'm leaving
Matt Eich
170 x 220mm, 64쪽, 소프트커버
9788894196030
일상은 지겹게도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삶은 언제나 천천히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태어나 자라고, 또 누군가는 늙고 사라진다. 그 변화의 순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미국 사진가 매트 아이크 또한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변화와 불안과 마주한다. 그의 부모님은 결혼 33년 만에 이혼하고, 그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낯선 곳으로 이사한다. 아이크는 삶의 변화와 불안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바라본다.

#9
Delta
Hannah Modigh
115 x 310mm, 113쪽, 하드커버(우드)
979109106710
유난히 길쭉한 판형의 사진집을 펴면 지면 위아래로 사진들이 리듬감 있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작가의 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 촬영된 사진들에는 할머니의 임종부터 장례식 그리고 아이의 탄생까지 일상사가 펼쳐지며, 기다란 여백 사이로 죽음과 삶이 교차된다. 그런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아이는 자란다.

#10
함께한 계절
신정식
128 x 240mm, 114쪽, 하드커버
9791170370239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아들의 시선이 담긴 사진책이다. 작가는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한다. 기억을 잃고 있는 아버지와 시간을 붙잡고 싶은 아들 사이에서 싹틔운 사진책 『함께한 계절』은 그들이 ‘함께했던 계절’을 기록하고, 또 그들이 ‘함께할 계절’을 절실하게 기약한다.

#11
MOM
Charlie Engman
205 x 275mm, 220쪽, 하드커버
9783907236048
크고 두꺼운 책에는 오직 한 사람만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캐슬린 맥케인 잉그먼’, 사진가의 어머니다. 작가는 2009년부터 10년 넘게 어머니를 촬영해 왔다. 아들의 카메라 앞에 선 어머니는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고 새처럼 자유롭게 움직였고 아이처럼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작업에 관한 소감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12
Mother
Paul Graham
240 x 315mm, 60쪽, 하드커버
9781912339457
저녁 무렵의 요양원에서 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본 장면이 담긴 사진책 속에서 시간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흐른다. 그 속도에 맞춰 사진마다 달라지는 블라우스의 무늬와 카디건의 색깔, 빛의 기울기를 천천히 감지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양원 응접실에 앉아 있게 된다. 나 또한 시곗바늘이 똑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와 함께 모든 신경을 동원해 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다. 매우 느리게 또 숨을 죽이며…

#13
Santa Barbara
Diana Markosian
216 x 279mm, 216쪽, 하드커버
9781597114721
사진책 초반부에는 장면 구성과 배역 정보가 담긴 영화 대본 같은 페이지가 나온다. ‘다이앤 마르코시안’의 사진 작업 <산타 바바라>는 마치 영화처럼 모든 장면을 연출해 만들었다. 작가는 1990년대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던 가족의 여정을 재현했다. 여러 차례 오디션을 거쳐 배우를 캐스팅하고, 예전에 살았던 집을 세트로 만드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과거의 시간을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지난 유년의 기억을, 젊었던 어머니의 희생을 재회하게 된다.

#14
Picture of My Life
Junpei Ueda
176 x 248mm, 140쪽, 하드커버
9788894196023
작가 ‘우에다 준페이’의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아버지 또한 아내를 따라 자살했다. 부모가 부재한 집에서 비극적인 가족사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준페이는 차즘 집에 남겨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렸던 그림들과 어머니가 찍었던 사진들 속에 자신의 모습이 소중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준페이가 부모와 함께한 가족사진이 마지막 페이지에는 준페이가 아내와 자녀와 함께한 가족사진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15
The Restoration Will
Mayumi Suzuki
190 x 275mm, 104쪽, 하드커버
9788894196047
일본의 사진가 ‘스즈키 마유미’의 부모님은 2011년 일본에 쓰나미가 강타했을 때 실종된다. 그녀는 파괴된 집의 잔해와 진흙더미 속에서 아버지가 사용했던 렌즈와 사진 앨범을 발견한다. 이 책에는 당시에 발견했던 앨범 속에서 되찾은 가족 사진들과 처참하게 파괴된 마을의 모습들, 그리고 아버지의 렌즈로 촬영한 풍경사진 등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쓰나미로 파괴된 가족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16
Rachel, Monique
Sophie Calle
177 x 245mm, 204쪽, 하드커버
9782915173789
프랑스의 개념미술가 ‘소피 칼’은 2007년 돌아가신 어머니 모니크 쉰들러가 건네준 16권의 일기와 사진을 이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책에서는 어머니의 임종 장면부터 어머니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는 이야기, 어머니의 유품과 함께 떠나는 여행까지 어머니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시간이 펼쳐진다. 특히 ‘Mother’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의 이미지가 연이어 펼쳐지는 대목에서는 어머니를 잃은 딸의 깊은 상실감이 엿보인다.

#17
Where Mimosa Bloom
Rita Puig-Serra Costa
160 x 225mm, 96쪽, 하드커버
9788293341048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겪은 슬픔과 상실감, 애도 의식을 다루는 사진책이다. 사진가인 ‘리타 푸이크-세라 코스타’는 2년가량 어머니와 연관된 중요한 장소와 사물, 사람들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고, 이를 정리해 책으로 만들었다. 이는 그저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고, 어머니를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8
Who is Changed and Who is Dead
Ahndraya Parlato
200 x 252mm, 136쪽, 하드커버
9781913620097
이 책은 어머니의 자살부터 아이의 탄생까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에는 어머니의 유품을 찍은 사진들, 어머니의 뼛가루를 뿌려 만든 포토그램, 19세기의 ‘히든 마더 포토그래피’를 재현한 사진들까지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이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된 자신을 되돌아보며 복잡하고 모순적인 모성애를 탐색한다.

#19
A Stranger in my Mother’s Kitchen
Celine Marchbank
218 x 275mm, 176쪽, 소프트커버
9781911306863
저자인 ‘셀린 마치뱅크’의 어머니는 평생 요리사로 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혼자 어머니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딸은 수많은 레시피를 가득한 노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머니가 남긴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면서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접시 또 한 접시 음식 만들어질 때마다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둘만의 작별 의식이 한 권의 사진책으로 남게 되었다.

#20
Moisés
Mariela Sancari
175 x 260mm, 64쪽, 하드커버
9788409426164
저자인 ‘마리엘라 산카리’는 신문에 광고를 내고 일흔 살 전후의 노인들을 모델로 구한다. 아버지 ‘모이세스’가 자살을 하지 않고 살았다면 그 나이쯤이었다. 그들은 산카리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입었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모이세스를 대신해 그녀의 아버지가 되어준다. 그 사진 중에는 산카리가 슬쩍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장면도 있다. 사진 안에서 딸은 아버지 뒤에 서 있기도 하고, 또 아버지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산카리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재회를 이미지 안에서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