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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city

성립 @seong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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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화면과 얇은 종이 위에 서식하는 단색조의 가늘고 굵은 선들이 모이고 흩어져 높낮이 없이 부유하는 형상을 만든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여 면을, 선명한 구상을 형성하는 조형언어에 반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작가 성립은 드로잉이라는 방법론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과 자신에게서 파생된 지극히 사적이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시각화 한다. 추상적인 선들이 흩어지고 모여 만들어내는 형태는 선명하지는 않지만 특정 상황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하고, 인물들의 성별이나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내재된 감정이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나무, 풀, 꽃 등의 자연물은 날카롭고 뾰족한 직선과 유연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대비로 저마다 가진 특색을 단숨에 알아 차릴 수 있게 한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재현하기 보다는 움직임이나 두드러지는 특징을 담백하게 표현하여 관람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또한 흰 여백과 검은 선묘의 대비는 면으로 채우는 회화와는 달리 움직임의 흔적과 지나간 과정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우리를 더욱 몰입하게 한다.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선. 작가의 움직임은 늘 글쓰기에서 시작된다. 그는 주로 연필, 펜 등의 글을 쓰는 도구들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그의 생각이 발현되는 곳은 비단 화폭 뿐 아니라 작은 노트나 순간을 담은 사진이 되기도 한다. 수십 장의 노트에 써 내려간 짧고 긴 문장들은 직접적인 소통의 언어로서 보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언하지만 사진은 단지 그의 시선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사진 속 정지된 장면에 보이지 않는 선들은 그로부터 파생되는 드로잉에 어지러이 흩어졌다 다시금 모여든다. 우리는 그 선을 통해 무언가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인,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에서 유영하는 가느다란 선들의 유희 속에 작가의 시간과 고민들이 녹아 있다.

결국 이렇게 화면 위에 현현하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끊임없는 사유의 결과물이다. 작가에게 그림은 무수한 상념과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주하는 작품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공감하거나 끝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불투명하지만 사유로 가득한 그 순간들. 성립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 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얼굴 없는 인물들, 이름 모를 나무와 식물들, 빼곡히 채워진 수많은 문장들, 쌓여진 텍스트들은 작가의 서사이자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작품들을 마주한 이들은 수없이 많은 선들과 그 틈 사이, 지나간 흔적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생각 혹은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안내

  • 전시기간:  2023년 11월 25일 ~ 2024년 1월 28일 (성원에 힘입어 연장되었습니다.)
  • 관람시간:  11:30 ~ 19:30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 작가:  성립    seonglib.com
  • 관람료:  무료  

관람 안내

  • 쾌적한 관람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예약하신 분에 한해 입장 가능합니다.
  • 찾아오시는 길
    강남구 선릉로 838 페코빌딩 지하 1층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스타벅스 왼편)

※ 주차는 어려우니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주세요.

전시 관람 예약 후 전시에 방문하시면,
관람객 1명마다 후지필름코리아가 1천원의 기부금을 적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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